40이 넘었는데 인생이 실패했다는 생각에 괴롭습니다.

마흔이 넘었는데 인생이 실패했다는 생각에 괴롭습니다.
깊은 산속, 고즈넉한 절의 마당에는 아침 안개가 자욱하게 깔려 있었습니다. 이따금씩 새들이 우짖는 소리가 들려왔고, 바람에 실려 온 향내가 고요한 공기를 감쌌습니다. 경내를 가득 채운 정적 속에서 대웅전 앞에는 노스님이 조용히 앉아 있었습니다. 손에는 목탁을 들고 있었지만, 그것을 두드릴 생각은 없는 듯 보였습니다. 그저 눈을 감고 앉아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때 한 여인이 조심스레 대웅전으로 걸어 들어왔습니다. 그녀의 발소리는 마당의 자갈 위에서 사박사박 잔잔하게 울렸습니다. 옷차림은 소박했으나 눈빛에는 깊은 번뇌가 서려 있었습니다. 여인은 스님 앞에서 조용히 절을 올린 후, 한참을 머뭇거리다 마침내 입을 열었습니다.
“스님, 저는 제 인생이 실패한 것 같습니다.
스님께서는 천천히 눈을 뜨고 그녀를 바라보았습니다. 노스님의 눈빛은 따뜻하고도 깊었습니다. 마치 그녀의 마음을 이미 다 알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습니다. 스님은 조용히 물었습니다.
“무슨 사연이 있기에 그런 생각을 하십니까?”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젊은 시절 학문을 깊이 닦고자 서당에서 열심히 글을 배웠습니다. 어릴 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고, 저도 언젠가 학문으로 세상에 보탬이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끝내 과거 시험에서 낙방하고 말았습니다.
처음 한두 번은 다시 도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번번이 실패하고 나니 점점 자신감을 잃어갔습니다. 가족들도 처음에는 응원했지만, 점점 기대를 접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결국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학문을 이루지도 못했고, 높은 벼슬길에 오르지도 못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니 어느덧 혼기도 놓치고 말았습니다.”
스님께서는 그녀의 말을 가만히 듣고 계셨습니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덧붙였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제 처지가 너무나 초라하게 느껴졌습니다. 이제는 마을에서 마님들의 바느질을 도우며 겨우 생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문득문득 어릴 적 꿈꾸던 삶과는 너무도 멀어져 버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게다가 저는 아직 시집도 가지 못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하나둘 좋은 혼처를 만나 단란한 가정을 이루었건만, 저는 어느새 나이가 들어 혼인을 기대하기도 어려워졌습니다. 사람들과 마주할 때마다 기가 죽고, 제 자신이 한없이 보잘것없어 보입니다.”
그녀는 손을 꼭 쥔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스님, 저는 무엇을 잘못한 것일까요? 왜 제 삶은 이렇게 흘러가 버린 것일까요?”
스님께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바닥에 떨어진 작은 돌멩이를 집어 드셨습니다.
“이 돌을 보십시오.”
그녀는 고개를 들고 돌을 바라보았습니다. 스님께서 돌을 손에 올려놓고 천천히 말씀하셨습니다.
“이 돌이 지금 이대로 부족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녀는 돌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대답했습니다.
“그냥… 돌일 뿐입니다.”
스님께서는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돌은 다른 것이 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만약 이 돌이 ‘나는 옥처럼 빛나야 한다’며 괴로워한다면, 그것이 어리석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녀는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스님은 계속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대는 과거에 합격해야만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혼인을 해야만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있는 그대로의 그대가 충분하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지 못하니 괴로움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초라한 삶을 살고 있지 않습니까? 남들은 학문을 이루고, 좋은 혼처를 만나 안락하게 사는데, 저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조용히 하늘을 가리키셨습니다.
“구름을 보십시오. 저 구름은 어디로 가야 합니까?”
그녀는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구름은 바람이 부는 대로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구름이 가야 할 곳이 따로 없듯이, 사람 또한 반드시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그대가 있는 자리에서 그 자체로 충분하다는 것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남들 앞에 나서기가 두렵습니다. 괜히 주눅이 들고, 남들이 저를 하찮게 볼까 걱정이 됩니다.”
스님께서는 빙그레 웃으며 말씀하셨습니다.
“그대는 혼인을 하지 못했다고 하였지요. 나는 일흔이 넘도록 홀로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 있지 않습니까?”
그녀는 예상치 못한 대답에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스님께서는 고요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으셨습니다.
“남들과 비교하지 마십시오. 남이 가는 길이 그대의 길이 아닙니다. 그대는 있는 그대로 귀하고, 지금 이 순간도 소중합니다. 괴로움은 ‘이대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에서 오나, 사실은 ‘지금 이대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사라지게 마련입니다.”
그녀는 가만히 눈을 감았습니다. 마치 오랫동안 움켜쥐고 있던 무언가를 서서히 놓아주는 기분이었습니다.
산바람이 부드럽게 불어왔습니다. 나뭇잎이 사르르 흔들렸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마음속에서도, 오랫동안 단단히 쥐고 있던 괴로움이 살며시 흔들리고 있었습니다.